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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례1029]포천 광덕산·백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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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자 : 2003.10.28
  • 아뿔사, 당했구나
    히어리 단풍숲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난을 많이 당하고 있는 생물종을 꼽는다면 단연 양서·파충류가 아닐 수 없다.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누렁이…, 부모세대들에게는 누구나 어릴 적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친숙한 이름들이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동화책이나 그림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낯설고 드문 동물이 돼버렸다. 물이 더러워져 쫓겨나고, 개발사업으로 서식지를 빼앗기고, 무자비한 남획으로 사람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환경부는 이르면 내년 7월부터 개구리 뱀 등 모든 야생동물을 잡은 사람은 물론 사 먹는 사람까지 처벌하도록 ‘야생동식물보호법’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양서·파충류가 개발과 오염으로 찌든 수도권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곳이 과연 있을까. 지난 1991~92년 답사 당시 수도권에서 양서·파충류가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꼽혔던 경기도 포천 광덕산과 백운산 일대 계곡을 다시 찾아가면서 불안한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11년 전과 마찬가지로 답사에 동행한 박병상 박사(동물분류학)는 “때마침 겨울잠에 들어갈 철이어서 계곡을 샅샅이 살피지 않으면 남아 있다해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애써 큰 기대를 자제했다.

    지난 10월 중순, 답사길은 예전보다 잘 닦인 도로에 평일인데도 만만찮은 교통체증으로 예상보다 1시간 가까이 더 걸렸다. 38선 이북으로 수도권에서 가장 빨리 물드는 단풍 명소인 까닭에 관광버스 행렬들이 끊이지 않았고, 가는 길 내내 공장 음식점 모텔 등 건물들이 늘어서 더 이상 전원풍경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갈비집과 막걸리로 유명한 이동면을 지나 일동면 백운계곡 입구에 들어서자 막연했던 불안감은 한층 깊어졌다. 계곡 양쪽으로 즐비한 민박집과 음식점은 10여년 전에 비해 더욱 세를 넓혀 번성했고, 물가에 방치된 평상과 천막, 방가로들은 지난 여름 얼마나 많은 인파가 휩쓸고 갔는지 한눈에 짐작케했다. 상가의 행렬이 끝나가는 지점에는 포천군에서 통제하고 있는 백운산 계곡 국민관광지 매표소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차장 오른쪽에는 대형 야영장이 조성돼 있었고 불을 피워 음식을 해먹거나 쓰레기를 태운 잔해들이 곳곳에 방치돼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인근 음식점의 주인은 ‘특별 서비스’라며 ‘노루고기 장조림’을 권하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참개구리가 많이 잡히는 곳도 알고 있다’며 내놓고 자랑을 했다. 어느 곳에서도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홍수에 떠밀려내려온 자갈더미들을 지나 백운계곡을 10m 남짓 거슬러 오른 일행은 바위 밑 얕은 물 속에서 한국 특산종인 물두꺼비 수컷 한마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개구리와 달리 멀리 뛰지 않는 물두꺼비는 촬영을 하는 동안 내내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었지만 아직은 겨울잠에 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또다른 바위를 들추자 진초록색 물뚜거비와 붉은색 북방산개구리가 포개져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났다. 몸집이 더 크고 뒷다리가 발달한 북방산개구리가 재빨리 도망을 치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두마리씩 서로 껴앉고 겨울잠을 자는 양서류의 생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 꼬리치레도롱뇽을 발견했던 광덕산 자락의 큰골계곡에서도 일행은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계곡에 들어서자 마자 어렵지 않게 꼬리치레도롱뇽과 북방산개구리 한마리씩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잘한 바위 틈을 몇번 더 뒤지자 놀랍게도 꼬리치레도롱뇽의 유생 대여섯마리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 이곳이 이들의 집단서식지임을 확인시켜줬다. 차고 맑은 계류 속 바위 틈에서 번식하는 꼬리치레도롱뇽은 피부호흡을 하는 까닭에 1급수를 상징하는 지표생물이자 그만큼 오염에 취약해 멸종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계류 속에는 깨진 병 조각, 쇠숟가락, 버려진 목장갑 등 쓰레기들이 보이긴 했지만 곱게 내려앉은 단풍을 고스란히 품은 물빛은 여전히 투명했다. 하지만 100m 남짓 올라가자 ‘의문의 철조망’이 쳐있어 더 이상 진입을 할 수 없었다. 계곡 초입에 있는 유일한 음식점의 주인 홍만의(44)씨가 “여름에 손님들이 몰려와 계곡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음식 운반도 어렵고 쓰레기 치우기도 번거로워 쳐놓은 것”이었다. 순전히 영업상 편의를 위해 임으로 설치해놓은 통제선이었지만 꼬리치레도롱뇽을 비롯한 생물들에게는 그나마 오염과 훼손을 막아주는 안전판 구실을 해주는 셈이었다.

    박 박사는 “이렇게 철저하게 보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상황에서 예민한 양서류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정말 기적처럼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직은 숲이 건강하고 계곡 상류여서 직접적인 오염원이 없는 덕분인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1주일 뒤 백운산으로 2차 답사에 나선 일행은 믿기지 않은 장면에 또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맘때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정상을 향해 20분 남짓 오르는 능선길 주변으로 10m남짓 노오란 단풍터널을 이루고 있어야 할 한국 특산 희귀식물 히어리군락이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어림잡아 40~50년생이 됐을 나무들은 무참히 잘려진 채 왼쪽 산비탈에 쓸려내릴 듯 쌓여 있었고, 그 속에서 어린 가지들이 돋아 올라 빈약한 잎새들이 지고 있었다. 대신 곳곳에 군사용 교통호와 참호가 파여 있었고, 지뢰 매설을 위한 표지봉들이 박혀 있었다. 상대적으로 키가 크고 굵은 참나무들은 남기고 5m 높이의 활엽수인 히어리만 잘라낸 것이었다. 등산객들은 “군에서 참호를 판 뒤 시야 확보를 위해 이른바 ‘사계청소’를 한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지나쳤다.

    이 지역에서 훈련을 지휘하고 있는 5군단의 공보 담당자는 “관할 지자체에서 보호를 요청했거나 표시만 해놓았어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를 했을 것”이라며 포천시의 무성의한 관리를 은근히 탓했다.

    하지만 백운계곡 입구에서 비성수기에도 주차요금을 받으며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는 포천시의 담당자들은 “백운산 일대는 군인들이 봄 가을로 훈련을 하는 ‘군사보호구역’이어서 산불방지 외에 일체 간섭하지 않고 있다”며 사실과 다른 해명을 하기에 급급했다.

    이미 10여년 전에 촉구했던 철저한 자연생태계 보호 외침이 허공 속의 메아리였을까.

    지난 60년대말 전남 광양과 지리산 등 남부지역에서 분포하는 히어리가 이 곳에서 북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던 전의식 회장(식물분류학·한국식물연구회)은 “2~3년 전까지만해도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며, “그나마 벌목한 채 쌓아둬 어린 나무들이 명맥을 이을 수 있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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