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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12.31] 하늘 수놓았던 그많은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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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 2,176
    • 등록일자 : 2004.01.01
  • 창원 주남저수지

    2003년 12월18일, 그 곳에 새들은 없었다. 주남저수지는 텅 빈 겨울바다처럼 쓸쓸하기만 했다. 한컷 들뜬 기분으로 탐조여행을 나온 유치원생들은 새 구경은커녕 몸을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에 둑길에 잠시 서 있지도 못한 채 되돌아가야 했다. 아침 일찍부터 오전 한나절 21척이 번갈아가며 조업을 한다는 고기잡이 동력선들도 바람에 뒤집힐까 두려워 모두 철수해버렸다고 했다. 가까스로 오른 철새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꼼꼼히 살펴보자 호수 한가운데 갈대숲 사이로 하얀 백조(고니)와 몸집이 작은 흰죽지 몇마리가 겨우 눈에 들어왔다.

    수면을 뒤덮고 하늘을 가리웠다던, 그 많은 가창오리떼는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경남 창원시 동읍에 자리한 주남저수지는 지난 1984년 10월 전세계적으로 개체수가 크게 줄어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가창오리 수만마리가 머무르면서 한반도에서 월동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시켜준 대표적 철새 도래지다. 가창오리는 지난 1948년 수원에서 무리지어 이동했다는 기록이 있는 등 추수철인 9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눈에 띄기는 했지만, 주남에서 겨우내 발견되기 전까지 대부분은 월동지인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잠깐 들르는 나그네새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10여년 동안 주남(용산)·산남·동판 등 3개 저수지 약 180만평으로 이뤄진 주남 철새도래지에서는 가창오리를 비롯해 고니 큰기러기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등 천연기념물들과 청둥오리 큰기러기 쇠기러기 넓적부리 등 최고 70여종의 겨울 진객이 20만마리까지 관찰됐다.

    지난 91년 12월 <한겨레> ‘이곳만은 지키자’ 취재진이 답사한 당시에도 30여종 10만여마리의 철새가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당시 경고한 대로, 커다란 굉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고기잡이를 하는 동력 어선들의 등장을 신호로 주남저수지의 서식환경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새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88년 경남대 함규황 교수팀의 조사에서 14만4092마리를 기록했던 3개 저수지의 철새 개체수는 98년 4만3136마리로 줄었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조사 기록을 보면 2001년 32종 1만7085마리, 2002년 36종 4058마리로 격감했다. ‘주남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대표 최종수)에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는 올 겨울의 철새 도래 속보는 지난 24일 현재 큰부리기러기 쇠기러기 등 수금류 1천여마리와 큰고니 40여마리, 노랑부리저어새 10여마리 등 기껏해야 1천~2천마리가 머무르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번 답사에 동행한 함 교수와 창원환경연합 회원들은 “애초 지난 11월초 5천여마리가 날아왔던 가창오리들은 동력 어선들의 겨울 조업이 시작되자마자 주남을 떠나 인근 창녕의 우포늪과 낙동강 하구 등으로 피난을 갔다”며, 올 겨울에 또다시 최저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가창오리들은 9~10월 수천㎞ 떨어진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추수가 끝난 천수만 간월도 금강하구 등 서해안 일대 논바닥에서 벼이삭 등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뒤 좀더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 남하해 주남저수지까지 왔다가 여의치않자 다시 떠난 것이다.

    주남과 둑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산남저수지에도 새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제 때 농업용수 공급 등을 위해 조성된 인공호수인 주남저수지의 관리를 맡고 있는 농업기반공사 창원지사에서 저수용량 확보를 이유로 주기적 준설을 하는 바람에 새들의 먹이가 될 만한 수초와, 그 사이에서 서식하는 작은 물고기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새들은 어로행위가 금지돼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조용한 동판저수지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동판에서도 구석에 숨겨놓은 동력 어선이 발견돼, 철새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도 고기잡이를 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가창오리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월동하는 겨울철새로 자리를 잡았다. 국립환경연구원의 겨울철새 동시 센서스를 보면 가창오리는 지난해 1월 173종 93만2천여마리 가운데 30.8%(28만7천여마리)를 차지해 청둥오리를 제치고 1위에 오른 데 이어 올 1월에도 189종 97만8천여마리 중에서 30만3천여마리(30.98%)로 가장 많았다.

    이렇게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는 가창오리가 주남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마디로 ‘주민들과의 마찰’ 때문이다.

    우선 일제 이래 어촌계를 조직해 대물림 생업으로 삼고 있는 22명의 어민들이 90년대초 고기잡이에 동력선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새들, 특히 소리에 민감한 가창오리에게 치명적 상처를 남겼다.

    “수초와 연꽃 때문에 작업이 곤란한 여름만 빼고 7개월 동안 하루 4시간씩 그물을 건지면 가물치 숭어 잉어 붕어 등 평균 20만~30만원 벌이가 된다. 농사는 해 본 적도 없는데 새 많이 오라고 그만두면 뭘 먹고 사나”

    40년째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는 주민 박아무개씨는 “요새 새들이 줄어든 것은 연이은 태풍 피해로 먹이가 되는 수초가 다 쓸려나버렸기 때문이지 새삼스럽게 고깃배 소리에 놀란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와 산림청, 창원시 등은 10여년 전부터 습지보호구역 조수보호구역과 같은 철새 보호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어민들은 갈대숲에 불을 내거나 버드나무를 벌목하는 등 강력 반발해 지금껏 수렵과 낚시 금지 외에 별다른 법적 보호조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동읍과 대산평야 1800㏊에서 논농사와 겨울 보리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 역시 수확을 축 내는 새들이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아예 새들이 접근할 수 없는 비닐하우스재배가 늘어나고 있고, 폭음기까지 설치해 새를 쫓는 사례도 있다.

    97년 환경부는 겨울 철새도래기 5개월 동안 주변 30만평의 농지를 주민에게 보상을 해주고 임대하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3억원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무산된 적도 있다.

    지난 95년에는 저수지에서 100m 거리에 국방부가 건축허가도 받지 않은 채 군인아파트 10개 동을 지어놓았고, 97년에는 인근 육군정비창과 자동차부품업체에서 유출된 기름이 흘러들어와 오염사고가 발행하기도 했으며, 2001년 둑길을 따라 자동차용 도로가 확·포장되는 등 새들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문화관광부가 남해안 관광벨트조성사업의 하나로 주남에 철새탐방을 위한 생태학습관 방문자센터 등을 짓도록 14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개발제한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었다. 3년 가까운 갈등 끝에 주민들은 생태학습관과 주차장 건립만 받아들여 현재 주남저수지 초입에서 20억원 규모의 생태학습관 공사가 한창이다.

    “새들은 속수무책으로 떠나고 있는데 건물만 번듯하게 지어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가창오리의 환상적 군무를 기대하며 지금도 하루 500여명씩 찾아오는 탐조객들은 허망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끝>

    창원/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사진 이정용 기자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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