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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기고]인간의 비움, 자연의 채움
  • 등록자명
    환경부
  • 조회수
    874
  • 등록일자
    2020-05-04

인간의 비움, 자연의 채움 



공간(空間)은 '빈 곳'을 뜻한다. 빈 곳을, 동물은 본능에 의해 구성하는 영역으로 만든다면, 인간은 의식과 이념으로 채워지는 세계로 만든다. 공간의 구성에 따라 세계는 사회의 양상을 달리하고 특정한 현상을 출현시킨다. 저출산은 가정, 부동산은 주거라는 공간에 가족관, 자본과 같은 이념이 투영되는, 사회 내의 특정한 현상인 셈이다.

이런 까닭으로 인간을 공간적 동물로 부른다. 코로나19로 대표되는 신종 감염병은 인간이 초래한 '공간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네이처'의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지구 표면 중 75%가 인간의 압력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신종 감염병 중 75%가 박쥐 등 야생동물로부터 기인한다고 소개한다. 자연 공간에 압력을 가한 결과로 동물 유래 신종 감염병이 유입됐다고 본다면, 75%라는 숫자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터이다.


본디 자연은 탄력성과 회복력이 뛰어나다. 그 원천에는 '생물다양성'이 있다. 다양한 공간에서 각종 생물을 지탱함으로써 환경 변화를 완충하고 질병 저항력을 제공한다. 생물다양성은 제 공간을 온전하게 유지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데, 불행히도 인간 활동은 이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자연 공간을 '부가가치 창출' '자본 증식'과 같은 이념 아래 다뤄왔기 때문이다.


각종 토건 사업, 벌목, 공장식 축산, 야생동물 밀렵·밀거래는 자연 공간을 잠식했고,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편화시켰다. 이는 생물다양성 감소, 면역방어체계의 단순화를 낳았고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던 완충지대의 파괴로 이어졌다. 자연에 머물러 있던 병원체가 인간의 공간으로 유입될 기회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신종 감염병만의 문제가 아니다. 폐기물 범람, 유해물질 누적, 물 부족 등은 자연과 인간 간 상호작용에서 발단된 공간의 위기이다.


공간의 위기는 과거와는 다른 의식과 이념으로 공간을 재구성할 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간 공간이 '비대면'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채움의 공간을 비움의 것으로 바꾸는 걸 전제한다. 자연 공간은 어떠해야 할까. 주거, 상품 거래, 지배와 배제 등으로 채워진 인간 공간에는 자연을 위한 비움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인간에 의한 복원이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차츰 탄력성을 회복해 자연 스스로 순환과정을 정상으로 작동시킬 것이다. 인간의 압력을 받는 지구 표면에 대한 비움은 그래서 자연의 채움이 대신한다. 자연에는 비움이 곧 채움이다.


원문보기: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0/05/45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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