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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엣 조상들의 물 섬기기
  •     등록자명 : 김재일     조회수 : 3,153     등록일자 : 2005.06.09        

  •                   김재일(한강유역환경청 시민정책위원. 두레생태기행 대표 / doore91@hanmail.net)

    ■ 물은 생명이다.
    일찍이 옛 사람들은 모든 생명력의 기원을 물로 보았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방울에서 생겨났으며, 사람도 어머니 뱃속의 물(=양수) 안에서 있다가 세상에 나온다고 하였다.
    우리 개국신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물의 생명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고구려 동명왕의 모비인 유화를 비롯하여 신라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 고려의 여시조인 용녀 등등이 그렇다. 이것은 여성의 몸이 남성들과는 달리 생명을 직접 생산해내는 몸체이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날 밤에 우물에 떠 있는 달 그림자를 용알이라 하고, 그것을 떠서 먹는 여인은 아이를 갖게된다는 소박한 믿음이 있었다. 이 밖에도 물의 생명성에 관한 세시풍속들이 많다.
    강릉의 한 처녀가 굴산사 앞에 있는 샘에서 해(태양)가 뜬 물을 마시고 아이를 가졌다. 그 아이가 커서 나중에 범일국사가 되었다. 이 밖에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많은 전설들 속에서 물의 생명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팔기 풍속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으로 붙어 따라온 액을 떼기 위해 자연물과 인연을 맺어줌으로써 풀어내는 액막이 풍속 가운데 하나이다. 아이를 강에다 팔았으면 아명(兒名)을 \'용팔이\'라고 불렀다.
    해몽법에 있어서도 물은 생명성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여자들이 꿈에서 물을 보면 자식을 낳는다는 속신이 있다. 이 해몽속신 역시 \'물=생성의 정령\'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 물은 정화(淨化)의 상징
    물은 더럽고 탁한 것을 정화시켜주는 존재로서, 불교의 관욕(灌浴)이나 개신교의 세례(洗禮)나 가톨릭의 영세(領洗)는 모두 물의 정화성에서 비롯된 종교의식이다. 우리 민족도 물은 부정(不淨)한 것을 씻고 물리치는 신성한 것으로 인식했다.
    부뚜막에 조왕주발을 놓고 정화수를 담아올리는 것도 물로써 부정한 것을 씻어 가족들의 건강을 지키고자 함이었다. 서낭당이나 후원에서 소구소망을 빌거나, 제주(祭主)가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재계를 하거나, 심마니들이 산에 들기 전에 목욕재계하는 것도 모두 자기정화(自己淨化)를 통해 하늘과 만나고자 함이었다.
    부여 은산별신제는 억울하게 죽은 백제 멸망의 넋들을 달래는 제의이다. 제주에 쓰는 물을 얻기 위해 며칠 전부터 강가에다 금줄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물은 모든 제의의 근본이다. 물이 깨끗하지 않으면 신령이 깃들지 않고, 신령이 깃들지 않으면 아무리 굿을 해도 효험이 없다고 믿었다.
    물의 정화성은 다양한 세시풍속을 만들었다. 6월 보름날 냇가에 가서 머리를 감는 유두욕(流頭浴)도 서구의 세례의식과 다를 바 없다. 옛 선비들은 악담을 들으면 물로 귀를 씻고[洗耳], 못 볼 것을 보면 물로 눈을 씻었다[洗眼].
    조선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1세기 동안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신흥종교 가운데 상당수가 물에 대한 전통신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천도교의 \'정수치성\'을 비롯하여 소위 말하는 \'물법신앙\' \'찬물신앙\' 등이 그것이다. 물이 갖고 있는 치병력, 정화력, 벽사성, 천지조화성, 생명성, 재생성 등을 믿음의 골격으로 하고 있다.

    ■ 숲으로 물을 다스리다
    농경사회에서는 물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국태민안이 결정된다. 본격적인 농경시대가 열린 삼국시대에 이미 우리는 의림지와 벽골제와 같은 수리시설을 갖고있었다. 이와 같은 수리시설은 물을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사용했던 조상들의 슬기를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리시설이다
    옛 사람들은 일찍이 숲으로써 물을 다스리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경남 함양에 있는 상림은 강변에 조성된 호안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숲인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조림한 것이라고 한다. 이 숲은 장마철 위천의 범람을 막고, 숲을 이용해 물을 저장하도록 했다.
    물은 생성의 정령이요 풍요의 대본이므로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고구려는 국가적으로 수신제를 올렸으며, 신라는 크고 작은 소(沼)와 4대강에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는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는 산과 강에 벼슬까지 주었다. 조선시대에도 3면의 바다와 한강·압록강 등 6독(瀆)에 제사를 지내고, 호국신으로 섬겼다.
    전통적으로 농사의 흉풍(凶風)은 인재(人災)로 인식했다. 가뭄은 천신의 노여움에 의한 것이며, 이 노여움은 왕이 하늘의 덕을 받지 못하거나 백성을 잘못 다스렸을 때 내리는 벌로 인식했다. 그래서 왕은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에 앞서 죄수를 풀어주거나 세금을 경감시켜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선조 3대 태종은 가뭄이 잇따라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내가 왕으로서 위로 하늘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 한해(旱害)가 잇따르게 되니...\'라며 왕위를 아들 세종에게 물려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도 \'내가 죽으면 반드시 비가 오도록 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가 세상을 뜬 5월 10일 전후로 하여 비가 자주 내렸다. 그 무렵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했다.

    ■ 풍수는 자연과학이다
    땅은 모든 생명체의 모태(母胎)이며 또 마지막으로 귀의하는 고향이다. 풍수지리설은 그 땅의 기(氣)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그친다. 그러므로 풍수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물을 관리하는 득수(得水)와 바람은 잡는 장풍(臧風)이다. 풍수라는 어원도 바로 그 장풍과 득수에서 비롯되었다.
    마을에서 보아 물이 나가는 쪽을 수구(水口)라고 한다. 풍수적으로는 파(破)라고 한다. 파를 그대로 두면 그 물길을 따라 복이 나가고 삿된 것이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즉, 생명의 원천이며 농사에 요긴한 물이 그대로 흘러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옛 사람들은 수구에 숲을 조성하거나 장승 등을 세웠다. 서해 영흥도 내동마을 바닷가의 소사나무 숲은 방풍림을 겸한 전형적인 수구막이 풍수림이다. 이 밖에도 전국의 많은 수구막이 숲이 물자원을 지켜주고 비옥한 농토를 만들어주고 있다.
    청송 주왕산에 있는 대전사는 오래동안 폐사로 있었다. 폐사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다. 절의 스님들이 개울가로 물을 길러가기가 귀찮아서 경내에 우물을 판 후 얼마 안 가서 절이 망하고 말았다. 배[舟]형국인 경내에 우물을 둔 것은 곧 배의 밑창을 뚫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함부로 샘을 파지 말라는 소중한 교훈이다.
    현대에 와서도 풍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땅속의 수원(水源)을 찾아 지하수를 이용하는 것도 풍수의 하나요, 아파트를 지을 때 지반을 다지는 것도 풍수의 일이다.

    ■ 동네의 뜻을 아십니까
    물은 생명체에게 생존의 열쇠와도 같다. 모든 생성(生成)과 흉풍(凶風)이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적당한 시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만물은 고갈을 면치 못하며, 농업을 대본(大本)으로 하는 농경생활은 극도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물은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잘 이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달려있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물의 자원성(資源性)을 인정하면서도 소유에 있어서는 사(私)개념보다 공(公)개념이 강했다. 물은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고 순환되는 것이다. 자기 우물의 물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가 남의 우물물이 되고 남의 논물이 되고, 종내는 마을의 개울물이 되어 강을 이루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물자원은 사유물로서 분배(分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사람들은 따로 사적인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공유(公有)하는 무주공수(無主公水)를 기본개념으로 인식했다.
    \'동(洞)\'은 마을 단위를 나타내는 행정적 용어이다. \'洞\'자를 파자해보면, 물[水]을 함께[同] 먹고 사는 곳을 말한다. \'동네\'는 같은 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집합을 뜻한다. 즉, 단순한 지리적 관계로서의 동네가 아니라 목숨줄이 서로 이어져 있는 생명공동체를 의미한다. 또, 이 말에는 물자원의 분배와 관리 책임을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최근 경남 울산에는 입춘 전날밤에 맑고 깨끗한 물을 찾아가 물을 길러 마을 우물에 붓는 풍속이 되살아났다. 물당기기 풍속은 주민들이 무룡산 신성천(神聖泉)을 찾아가 맑고 깨끗한 물을 길어다 자기 마을 우물에다 붓는 행사이다. 이 풍속은 주민들로하여금 물의 중요성과 함께 물자원의 공유성을 깨닫게 해준다. 이 풍속에는 전통풍수에서 보는 동기감응(同氣感應) 사상이 바탕에 깔려있다.

    ■ 물 많이 쓰면 저승에 가서 다 마셔야
    호남지방에서는 정월보름날 손님이 와서 식수를 청하면 재수가 없고, 이 날 물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헤푸게 쓰면 그 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음력 6월 보름인 유두(流頭)는 동쪽으로 흐르는 강을 찾아가 목욕을 한다는 신라의 \'동유두목욕(東流頭沐浴)\'에서 나온 풍속이다. 액땜과 피서를 겸한 정화 풍속이다. 유두 풍속은 조선시대 들어와 더욱 활발하였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칠석날 시암제(샘제. 우물제사)를 지내는 곳도 있었다. 여름동안 행여 물이 썩지나 않았나, 우물 속에 벌레가 생기지 않았나 해서 깨끗이 대청소를 한 다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러한 샘제사는 여름철 더욱 기승을 부리는 수인성 전염병에 대한 예방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금기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한 방편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이 금기는 대개 속담이라는 언어형식을 통해 전승된다. 속담은 과학적 사실성보다 그 속에 들어가있는 속뜻이 요체이다.
    수질과 관련된 것으로는, \'냇물에 오줌을 누면 고 끝이 부어 올라 감자고추가 된다.’ ‘사내가 해를 보고 오줌을 누거나 계집아이가 흐르는 물에 오줌을 누면 결혼해서 아이를 못 낳는다’ \'도랑에 오줌을 싸면 지렁이가 고추를 문다\' \'먹는 물에 오줌을 싸면 벼락을 맞는다\' 등이 있다. \'물 씻어 먹는 물 없다\'는 속담도 물의 정화성을 바탕으로 한 수질보전 속담이다.
    물 절약과 관련된 것으로는, \'입춘날 물을 헤프게 쓰면 수신(水神)의 노여움으로 흉년이 들거나 홍수 피해를 입는다\' \'밥을 비벼먹고 그릇에 물을 부어놓으면 저승에 가서 부모를 만난다\' \'입춘날 물을 헤프게 쓰면 수신(水神)의 노여움으로 흉년이 들거나 홍수를 당한다\' \'세수물을 많이 쓰면 저승에 가서 다 마셔야 된다’ \'그릇에 물을 많이 떠서주면 정이 없어진다\' \'머리 감은 물로 발을 씻으면 저승 가서 죽은 어머니를 만난다\' \'물을 많이 쓰면 가난뱅이가 된다\'고 했다. \'입춘 전날에는 물을 남에게 주지도 얻지도 않는다\' \'보름날 물을 너무 많이 쓰면 수해를 당한다\'고 했다. 이러한 금기 속담들은 물을 소중히 여기고 잘 관리하라는 뜻이다.

    ■ 물챙이를 아십니까
    옛 사람들의 물을 위한 지혜는 실생활에서 풍속과 생활규범으로 후손들에게 전승된다.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 물동이를 다 채우고 남은 두레박의 물은 함부로 버리지 않고 반드시 우물에 도로 붓도록 했다. 남은 물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남은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쌀뜨물은 받아다 숭늉을 끓였고, 설거지물이나 먹다남은 음식국물 등은 한데 모아두었다가 겨에 섞어서 소나 돼지에게 먹였다.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은 정겨운 우리의 옛 생활상이다. 그러나, 친정 어머니는 시집가는 딸에게 ‘아기들 기저귀는 냇물에 가서 빨지 않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반드시 샘물을 퍼다가 빨고, 빨고 난 물은 텃밭이나 두엄터에 버리게끔 했다. 분뇨에 의해 수질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분뇨를 농사에 요긴하게 쓰기 위한 옛 사람들의 세심한 가르침이다.
    조선시대에는 오줌, 잿물, 콩가루, 녹두가루 등을 세제로 사용하여 수질 오염을 막았다. 잿물은 가장 흔히 사용된 세제로,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를 이용해 잿물을 만들어 이를 이용했다.
    물챙이는 \'물+창(窓)\'의 합성어이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의 개울에다 자잘한 꼬챙이를 발처럼 촘촘히 엮어서 박아놓은, 일종의 필터같은 것이다. 홍수  때 위쪽에서부터 떠내려오는 나뭇가지나 지저분한 것들을 걸러내기도 하고, 윗마을에서 잘못해서 흘러보낸 오물이나 쓰레기가 아랫마을로 흘러들어오기 전에 걸러내는 장치이다. 물챙이에
    이에 걸린 나뭇가지나 쓰레기 등은 비가 갠 후 건져서 말려두었다가 땔감으로 쓰고, 거기서 나온 재는 또 거름으로 썼으니 우리 조상의 환경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물이 귀한 섬지방에서는 물에 대한 신앙이 유별나다. 전남 완도군 장도리는 신라시대 장보고가 청해진을 열었던 곳이다. 그곳에는 해마다 장좌리 당제가 열린다. 당제의 마지막 순서는 마을 안에 있는 우물에 가서 굿을 하고 세 번 절을 올리는 순서이다.

    ■ 옛 것으로 새 것을 세운다
    전통사상이나 풍속은 자연에 바탕을 두고, 생명에 기초된 것들이 많다. 전통사상과 풍속은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지나간 기억들의 단순한 합집합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교집합이다. 즉, 어제의 가치가 오늘의 가치를 낳고, 오늘의 가치가 내일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구로부터 물질문명이 들어오면서 전통사상과 전래풍속들이 사라지거나 발빠르게 변질되고 있다. 즉, 옛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오늘과 내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연교육과 환경운동 등을 통해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민족의 농법은 논에 물을 대서 심는 `무삶이\' 농법이다. 무삶이는 건삶이보다 생태 가치가 높다. 갯벌이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해양습지라면, 논은 자연생태계와 도시생태계를 이어주는 육지의 인공습지이다. 논과 논주변은 다양한 동식물들의 산란지이자 서식지이다. 논 생태계는 맨땅보다 종다양성이 높으며, 위기에 처한 도시의 동식물들이 고향처럼 되돌아가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또, 생태계 복원의 공간을 제공해주며, 나아가서는 새로운 생물종의 출현을 가능케 해준다.
    우리의 전통사상이나 생태적 풍속 역시 농경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농경을 포기하고 기계적인 삶을 맹신하는 것은 생명과 환경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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