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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소개
우리 한반도의 젖줄~! 한강의 유래와 한강 유역에 대하여 소개합니다.
  • 한강
    북위 36。 30' ∼ 38。 55'동경 126。 24'∼129。 02'에 걸쳐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강으로 백두대간 태백산맥(太白山脈)에서 발원(發源)하여 강원도, 충청북도, 경기도, 서울특별시를 거쳐 서해(西海)로 유입되는 한반도(韓半島) 중부지역의 강으로 유량을 기준으로 할 경우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강이다.

    한강은 유역면적 26,018㎢, 유로연장 514.8㎞이며 직할하천 15개 하천연장 813.0㎞, 지방하천 12개 하천연장 553.0㎞, 준용하천 678개 하천연장 5,890㎞로 총 하천 705개 하천 연장 7,256㎞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강의 본류인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남한강(南漢江)과 북한강(北漢江)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한강
  • 남한강
    강원도 태백시(太白市)의 금대봉 검용소에서 발원해 유역면적 12,514㎢, 유로연장 375㎞이며 남서류, 영월읍에서 평창강(平昌江)을 합치고 충북의 단양군을 지나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제천시의 광대한 충주호(忠州湖)에 27억 5000만t의 물을 채우고 시설용량 40만kW의 발전소(1985년 준공)를 움직인 다음, 북서(北西)로 유로를 바꾸어 달천(達川)을 합쳐 충주시를 지나서 경기로 들어간다. 도계에서 섬강(蟾江)을 합치고 이어서 청미천(淸渼川)을 합류하여 북서로 유로를 잡아 여주군을 관류하면서 양화천(楊花川) ·복하천(福河川) 등을 받아들인다. 양평군으로 들어서면서 흑천(黑川)과 만나 서쪽으로 유로를 돌려 북한강과의 합류점인 양서면(楊西面) 양수리(兩水里)에 이른다.

    북한강(北漢江)은 강원도 금강군(북한)의 옥발봉에서 발원해 유역면적 10,834.8㎢, 유로연장 317.5㎞이며 금강산의 비로봉 부근에서 발원하는 남류, 금강천 ·금성천(金城川) 등을 합치면서 화천군에 이르러 양구군 쪽에서 흘러오는 서천(西川) ·수입천(水入川) 등과 만나서 파로호(破虜湖:저수량 약 10억t)를 이루고 다시 남하, 화천군의 지류들을 모아 춘천호(春川湖)에 물을 담고 나서 춘천시의 의암호(衣岩湖)에서 소양강(昭陽江)과 만난다.

    강원 인제군에서 발원하는 소양강은 남서류하면서 인제군과 춘천시에 걸치는 소양호(湖)에 29억t의 물을 채우고 20만kW의 발전소를 가동시킨 뒤, 의암호에서 북한강과 만난다. 다시 가평천(加平川)을 합치고 남이섬을 지나 홍천강(洪川江)을 합류하여 청평호(淸平湖)를 이루고, 경기에 들어서서 양평군과 남양주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양수리로 빠진다.

    양수리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한강은 경안천(慶安川)을 합류, 팔당호(八堂湖)에 괴었다가 서류하여 서울로 진입, 완만한 유속으로 시역(市域)을 관류하면서 중랑천(中浪川) ·안양천(安養川) 등을 합치고 북서쪽으로 직진하여 폭을 넓히면서 김포시와 고양시의 경계를 이룬다. 파주시에 이르러 곡릉천(曲陵川)을 합치고, 임진강(臨津江)과 합류한 다음 김포반도의 북부를 돌아 강화만(江華灣)에서 황해로 들어간다.

    남한강
  • 한강(漢江)의 유래(由來)
    한사군(漢四郡)과 삼국시대(三國時代) 초기에는 한강(漢江)과 임진강(臨陣江)은 한반도(韓半島)의 중간허리 부분을 띠처럼 둘렀다는 뜻에서 "대수(帶水)"라 불리웠고, 고구려(高句麗)때 광개토대왕비에서는 "아리수(阿利水)", 백제(百濟)는 "욱리하(郁理河)"라 했으며, 신라(新羅)는 상류를 "니하(泥河)", 하류를 "왕봉하(王逢河)"라 불렀다. 또한『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편(新羅編)" 지리지에 보면 왕봉현(王逢縣)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군(高揚郡) 행주지역으로 한강을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한산이란 한산주(漢山州)이며, 지금의 경기도 광주(廣州)를 가르킨다. 또 독이란 바다로 들어가는 강이란 뜻으로 북독이란 신라의 북쪽에 위치한 큰 강을 의미한다.

    고려(高麗)때에는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 내리는 긴 강이란 뜻으로 "열수"라고 불렀으며, 모래가 많아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불렀다. 그 이전에 백제(百濟)가 동진(東晋)과교류하여 중국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쳐서 한수(漢水)라 불렀으며, 그 뒤부터는 옛 이름은 차츰 없어지고 마침내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으로만 불리워졌다.

    한강(漢江)은 본래 우리말의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로 "한"은 "크다·넓다·길다"는 의미이며, "가람"은 강의 고어(古語)로 크고 넓은 강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경강(京江)이라고도 불렀으며 외국의 문헌에는 "서울강(Seoul River)"이라는 기록도 있다.

    한반도의 중앙부 평야지대를 차지하는 한강 하류부는 신석기시대로부터 문화발달의 터전이 되어왔으며 삼국시대 이래 쟁패(爭覇)의 요지가 되어왔다. 특히 조선시대의 태조가 이곳에 도읍함으로써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을 이루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강의 유래
  • 한강생태
    한사군(漢四郡)과 삼국시대(三國時代) 초기에는 한강(漢江)과 임진강(臨陣江)은 한반도(韓半島)의 중간허리 부분을 띠처럼 둘렀다는 뜻에서 "대수(帶水)"라 불리웠고, 고구려(高句麗)때 광개토대왕비에서는 "아리수(阿利水)", 백제(百濟)는 "욱리하(郁理河)"라 했으며, 신라(新羅)는 상류를 "니하(泥河)", 하류를 "왕봉하(王逢河)"라 불렀다. 또한『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편(新羅編)" 지리지에 보면 왕봉현(王逢縣)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군(高揚郡) 행주지역으로 한강을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한산이란 한산주(漢山州)이며, 지금의 경기도 광주(廣州)를 가르킨다. 또 독이란 바다로 들어가는 강이란 뜻으로 북독이란 신라의 북쪽에 위치한 큰 강을 의미한다.

    고려(高麗)때에는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 내리는 긴 강이란 뜻으로 "열수"라고 불렀으며, 모래가 많아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불렀다. 그 이전에 백제(百濟)가 동진(東晋)과교류하여 중국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쳐서 한수(漢水)라 불렀으며, 그 뒤부터는 옛 이름은 차츰 없어지고 마침내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으로만 불리워졌다.

    한강(漢江)은 본래 우리말의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로 "한"은 "크다·넓다·길다"는 의미이며, "가람"은 강의 고어(古語)로 크고 넓은 강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경강(京江)이라고도 불렀으며 외국의 문헌에는 "서울강(Seoul River)"이라는 기록도 있다.

    또한 한강 유역에는 높이 800m가 넘는 산이 50개가 넘고 그 중에 1,000m가 넘는 산이 48개에 이르는데 그 산들은 봉우리 둘레를 빼면 거의가 이른바 온대림 영역에 들며 그 대부분이 온대 중부에 자리잡고 있다. 한강 유역의 식물 수효는 그 산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나 풀들이다. 그리고 그 수효는 우리나라에 있는 전체 식물 종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한강생태1 한강생태2 한강생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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